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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담하라1999 (7)
관리자 조회수:1059 121.129.203.203
2014-08-27 16:52:13

배덕민의 작은 자서전6. 꽃동네의 입소

 

건대 부속 병원에서 갖고 온 X-ray 사진 그리고 약을 가지고 왔다. 먼저 인곡 자애 병원 6층에 입소와 입원을 동시에 했다. 여기도 건대 병원하고 같았다. 밤에 잠을 못 자게 한다. 좀 잠들만 하면 간호원이 깨우고 주사맞어요, 체온계 재 봐요. 약 먹어요. 피 빼요. 밤새도록 4~5 번이나 깨운다. 난 건대 병원 입원부터 인곡 자애 병원 퇴원까지 항상 링거액을 계속 맞았다. 밥이 나왔다. 건대 병원에는 작은 공기에 밥을 준다. 배고프다. 그런데 여기는 두그릇~세그릇 먹었다. 반찬은 B급 수준이지만 밥은 많이 주어서 좋다. 보통 결핵 호나자들은 잘 못 먹는다. 그런데 나는 잘 먹는다. 결핵 약은 밥맛이 나게 하는 약이다. 의사들은 결핵은 소모성 병이니까 잘먹고 잘 지내면 금방 낫는다고 한다. 나는 그곳에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갑자기 외사촌 놈이 생각났다. 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 몸이 점점 말랐다. 하루에 두세번씩 똥을 누러갔다. 몇년후 알고 보니 결핵이었다. 다 낫고 보니 체격이 너무너무 불었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내가 꽃동네에 가기전 나눔의 집 충무님이 나를 보고 형식적인 말인지 모르지만 “아까운 사람 하나 보낸다.“ 고 그랬다. 어쨌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밥만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 후 갑자기 의사가 나를 보고 결핵 병실로 옮기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한시간 쯤 있다가 어떤 사람이 왔다. 차를 타고 이분쯤 가서 꽃동네에 왔다. 난 하도 어이가 없었다. 한마디로 웃음이 나왔다. 내가 바로 꽃동네로 오다니 꿈에도 생각 못했다. 어쨌든 왔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왕에 여기까지 왔는데 살아보자.. 심신 책임자 수녀님께서 ”가족 여러분 그리고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여기는 밥먹는게 전쟁이다. 여기는 무조건 가족이 우선이다. 가족이 먼저 밥을 먹고 나서 봉사자들이 밥을 먹는다. 식당에 시간 제한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밥을 늦게 먹으면 봉사자 분들이 밥을 못 먹을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빨리 먹어야 한다. 난 218호에 20일 동안 있었다. 그곳에서 좋은 형이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이 곳은 일년에 한 두 번씩 방을 옮긴다. 그래서 좀 스트레스가 쌓인다. 204호로 옮겼다. 204호로 가보니 뇌성마비 둘이 있고, 그 나머진 거의 다 누워 생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전혀 말은 못한다. 그래도 나는 눈빛만으로도 알 수가 있다. 이제는, 가끔 가면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고 얘기도 한다. 밥 먹을 때는 자기도 밥을 간신히 먹을 수가 있다. 그런 사람들이 누워 있는 사람들에게 밥을 먹여 준다. 나는 그것을 보고 그 전에 집에서 꽃동네 비디오를 본 것이 생각났다. 나는 그 방에서 아무 도움도 못 주지만 내 나름대로 도움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가 도움 받은 놈인데 어쩔 수가 없다. 그 방에서 6개월 동안 재미있게 지냈다. 그런데 심신에 결핵환자가 점점 늘어나자 결핵 방이 새로 만들어졌다. 결핵환자들은 나까지 포함해서 10명이었다. 누가 그 방에 담당 봉사할지 무척 궁금했다. 누구나 거리끼는 방인데 누가 올까 궁금했다. 박정호 요셉 형제 님이 배정되었다. 그 전에 눈인사만 했는데 그 분이 담당 봉사자로 올지 생각도 못했다. 5개월 동안 꼬박꼬박 안 잊어버리고 식전 약을 주었다. 내가 가끔 입맛이 없어서 밥을 안 먹을 때는 억지로 먹여준다. 그렇게 가족들에게 사람을 배운다. 그 형제분 덕분에 결핵이 완전히 치료가 되었다. 지금도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결핵 약을 먹으면 약이 독해서 오줌을 누면 오줌 색이 빨간 색이다. 그렇게 일년동안 지겹도록 약을 먹었다.

꽃동네는 들어오면 믿거나말거나 천주교 신자가 된다. 나도 들어오자마자 3일 동안 교리공부를 받았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지만 하여튼 받았다. 8월 14일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오웅진 신부님께서 직접 하셨다. 나의 세례명은 ‘정하상 바오르’ 이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관심도 없었다. 그냥 형식적으로 생각했다. 물론 나도 집에 나와서 기독교를 4년동안 그냥 믿었지만 난 믿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물론 하나님은 있다고 본다. 왜? 하늘이 있으니까.. 난 한 마디로 말해서 종교는 카타이시스같다고 본다. 하와가 선약과를 따먹어서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났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나리오라고 본다. 만약에 하와가 선약과를 안 따먹었으면 어떻게 인종이 퍼질 수 가 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진짜 종교는 천주교라고 본다. 지금도 좋게 기억이 남는 것은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데 어떤 젊은 부부가 아기를 안고 미사를 드리러 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내 뇌속에 남았다. 어쨌든 믿음을 갖고 있으면 좋다. 난 아직 체험을 못해보았다. 그래서 믿음이 약한 건지도 모르겠다. 한번 기회가 있으면 체험을 꼭 해보고 싶다. 크리스챤이나 카톨릭 신자나 스님이나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것을 가끔 본 나는 감동을 받았다. 나 같으면 죽었다가 깨도 못할 것이다. 그렇게 믿음이 강한 신자가 부럽기도 하다. 나도 성경책을 틈틈이 읽었다. 다는 못 읽었지만 기본 골격은 조금 안다.

내가 꽃동네에 온 지도 한두 달된 어느 날 복도에 기어다니다가 우연히 세면장을 보게 되었다. 어떤 봉사자가 가족의 항문 속에 손을 집어넣고 똥덩어리를 하나씩 빼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2~3분 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난 그 모습을 난생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자기 똥도 아닌데 남의 똥구멍 속에 손을 집어넣어 똥을 꺼낼 수 있는가? 놀라웠다.

난 그후로 수도 없이 보았다. 난 새삼 장기 봉사자 분들이 존경스럽다. 자기의 식구도 아닌데 어떻게 밥도 먹여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똥도 치워주고 얼마나 고마운 분들인가! 세상에는 사는 만큼 행복하다. 왜? 그분들이 있기 때문에. 난 완전히 꽃동네의 인식이 180。 바뀌었다. 수녀님믈도 재미있고 가족들도 재미있다. 난 내가 그 전에 왜 꽃동네에 나쁘게 생각했는지 지금에 와서 좀 미안하다. 꽃동네에 오기를 잘했다. 대한민국의 제일 큰 시설이라면 단연 꽃동네이다. 하지만 가족들이 너무 많다. 요한의 집 원장님께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꽃동네에 가면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교인들이나 신자들이 한사람에 5명씩 부양하면 자연히 꽃동네는 없어질 것이다.” 라고.. 나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고 생각한다. 난 그 원장님의 말을 좀 다르게 얘기하고 싶다. 나는 꽃동네의 내부에 작은 공장 하나 지어서 가족들이 기술이나 배우면 사회에 나가도 밥은 먹고살지 않냐고 생각한다. 자꾸만 건물만 짓지 말고 줄여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이 모자란 면도 있지만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다. 어쨌든 나도 꽃동네의 가족이다. 참으로 좋다.

난 많이 안 가보았지만 꽃동네란 시설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웅진 신부님은 대단한 분이시다. 난 처음에 꽃동네라고 해서 작은 동네로만 알았는데 와서보니 거짓말을 좀 보태고 작은 도시 만하다. 이렇게까지 만들어주신 오웅진 신부님께 고마운 생각이 든다.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심신에도 작은 뮤직박스가 있었으면 한다. 가족들이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코너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엉뚱한 생각이다. 심신의 가족들은 너무 다 착하다. 간혹 좀 못된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도 악인은 없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주고 도와주고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자기 부모 형제도 싫어서 버렸는데 남남끼리 만나서 서로 돕고 사는 모습을 볼 때 난 새삼 부끄럽다고 느꼈다. 나는 참 행복한 놈이라고 느꼈다. 아직은 내가 꽃동네에서 죽을 때까지 있을 지도, 또 다른 시설을 갈 지 아직은 모른다. 그것은 하나님만 알 수가 있으시다. 그래도 난 꽃동네에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 그게 나의 바램이고 우리형도 똑같이 생각할 것이다. 어머니까지도....

나는 가끔 휠체어를 볼 때마다 스쳐 가는 한가지 기억이 난다. 그것은 7~8년전에 보았던 홍콩영화를 떠올린다. ‘종황사해’란 영화가 떠오른다. 그 영화에서 주윤발이 휠체어를 타고 춤추고 있는 장면이 2분 동안 나온다. 난 휠체어를 볼 때마다 자꾸만 그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보았을 때 세상은 사는 만큼 아름답다. 하지만 불공평한 게 너무 많다. 나 같은 놈은 안 죽고 한참 일할 나이에 사고로 죽고 아파서 죽고 난 이해가 안 간다. 나 같은 놈은 죽어야지 되는데 왜 엉뚱한 사람들이 죽는가.. 어릴 적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시각 장애인들은 보고 싶어도 못보고 얼마나 답답한 일일까.. 그것에 비하면 비록 몸은 불구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으니 나는 정말 행복하다. 그런데도 나는 자주 잊어버린다. 나는 불행하다. 나는 불행하다. 그러면 정말 불행해지고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그러면 정말로 행복해진다.

나도 뇌성마비지만 뇌성마비에 또 하나의 나쁜 점이 있다. 뇌성마비들은 각자의 세계가 따로 있다. 누군가 침범하면 싫어한다. 고집도 세고, 이기적인 면도 다분히 있다. 그리고 또 뇌성마비들은 똑똑한 척 더럽게 한다. 나는 그것들을 볼 때 더럽게 아니꼽다. 특히 뇌성마비들은 문제가 있다. 뇌성마비들끼리 안 어울리고 따로따로 논다. 대게 보면 통계학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래도 뇌성마비들끼리 결혼식도 하고 커플이 간혹 있다.

5년전에 뇌성마비 모임 회에 참석했는데 여자들이 귀걸이하고 루즈를 바르고 화장을 하고있었다. 난 그 모습을 본 순간 홀랑 깼다. 아무리 병신이지만 여자답게 보이고 싶은 본능이 있다. 나도 뇌성마비이지만 고칠 것이 너무 많다.

나는 가끔 TV 화면에 비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어떤 모습인가 하면 천사 같은 아이들이 심장병 또는 벽혈병에 걸려서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가끔 보곤 한다.

돈이 있어도 나 같은 병은 못 고치는데 그들은 돈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다. 난 그 현실이 아주 개 같다. 내가 볼 때 하나님은 너무 짖굳으시다.

나는 나이가 점점 먹어갈수록 눈물이 많아졌다. 그 전에는 눈물이 없다고 어머니에게 인정 머리 없는 놈이라고 구박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조금만 감정이 복받쳐 오르면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흐른다. 나도 나이가 먹었나 보다.

내가 몇 가지 작은 소망이 있다. 그 중에 한가지 작은 아파트 하나 얻어가지고ㅡ, 나 혼자 자유롭게 살고 싶다. 또, 한가지는 어머니의 마지막 임종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싶다. 그리고 또 우리형의 식구들이 건강히 행복하게 살아주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소박한 소망이다.

내가 바램이 있다면 어머니의 건강, 형의 식구들의 건강이 계속 유지되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몸 상태 지금 이대로만 유지되면 더 바랄게 없다.

한달여동안 이 글을 대신 써주신 분들에게 너무 고맙다.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신경써 주신 분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일일 봉사자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20세기 마지막날

배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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