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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1999 (6)
관리자 조회수:1040 121.129.203.203
2014-07-17 16:49:57

5. 건국대학교 부속병원 일주일 입원

 

 

병원에 가자마자 같이 온 나눔의 집 원생과 응급실로 데려갔다. 그 원생은 산소호흡기를 쓰고 있고, 나는 이것저것 초기검사를 받았다. 난생 처음 폴리를 끼웠다. 진짜 아팠다. 의사말로는 입원해야 되겠다고 한다. 배가 고파 죽겠는데 검사기간동안 금식이었다.

606호실에 입원을 했다. 나만 금식이고 옆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걸 보니 정말 먹고 싶었다. 간호원이 아무 것도 먹지 말고 설사 물약만 먹으라고 했다. 처음에는 배도 고프고 목이 마르니까 좀 맛있게 먹었는데 하도 많이 먹다보니 이젠 도저히 못 먹을 지경이 되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고 막걸리통 한말정도의 양을 먹었다.

이제는 변기에 앉은 채로 설사약을 먹었다. 위로 먹고 밑으로 나오고 아주 죽을 맛이었다. X레이도 찍고 CT 촬영도 하고 대장검사도 했는데 항문에 호스를 끼워 넣고 검사를 하고 있는데 똥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의사가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5분이 느낌으로 50분이 되는 듯했다. 의사들은 모니터를 보고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난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다 끝나고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검사 결과는 맹장이 터져서 수술을 해야 된다고 했다.

나를 간호해주신 충무님과 양호실 선생님이 번갈아 가면서 밤새도록 함께 있었다. 대소변도 받아주고 참 고마우신 분들이다. 나의 담당 선생님도 간호도 해주시고 그런데 검사결과는 오진으로 나와서 또 한 번 지겨운 검사를 받아야 되었다. 2차 검사 결과는 폐결핵이라고 나왔다. 난 그 말을 들은 순간 기도원이 갑자기 생각났다. 내가 그 곳에서 못 먹고 피곤하고 그 많은 스트레스.. 그것들이 원인이다.

내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형이 초췌한 모습으로 찾아 왔다. 나와 형은 하도 기가 막혀서 잠시 침묵이었다. 형은 나를 보고 그랬다.

어떻하냐.. 어머니도 어디에 계신지 소식도 없고.. 그렇다해서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너를 간호해 줄 수도 없고 너도 알다시피, 너네 형수도 올 수 없는 입장이잖아.. 이젠 너도 나이를 먹은 만큼 더 이상 나를 찾지 말아.. 너의 앞길은 네가 헤쳐가야지. 언제까지나, 나에게 의존할 수가 없단다. 어머니도 어디에 계신지도 모르고 네 조카놈도 매일 그저 그렇고 나도 무척 힘들다.. 그러니까 너라도 좀 도와줘. 그리고 만약 폐결핵이라고 진단이 나오면 보나마나 공주에 있는 결핵 병원에 갈지도 모른다. 각오하고 있어라.”

형은 그 말을 하면서 눈가에 눈물이 가득 맺혀있었다. 나도 갑자기 복이 받혀서 참지 못하고 눈물이 흘렀다. 서로의 눈물은 다르지만 생각은 같았다. 그 아무 것도 모르는 조카놈까지 병신이라니 어찌된 일인가? 우리 부모님은 남한테 나쁜 짓도 안 하시고 해코지도 안 하셨는데 이게 무슨 업보란 말인가? 나도 그랬듯이 조카놈도 아무리 자폐아지만 형과 형수는 가슴이 아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한마디로 우리 아버지나 우리 작은형이나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우리형은 나에게 주민 등록증, 영생민통장, 의료보험증, 장애자 수첩과 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으라고 20만원을 주고 갔다.

난 우리 작은형에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물보다 피가 진하다고 새삼 느꼈다. 아무튼 나눔의 집 측은 나를 받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전염이 될까봐.. 그래서 우리형은 충주시에 가서 사정을 얘기 해놓고 갔다. 나눔의 집 측과 시, 자꾸만 접촉을 했다. 그래서 꽃동네 인곡 자애 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난 결핵이라고 진단이 나오면서 특실로 옮겨졌다. 하도 돼지 족발이 먹고 싶어서 그 안에서 먹었다. 주말이 끼어서 못 가고 그 다음날 서류를 꾸며 가지고 시에 냈다. 시에서 내 서류를 꽃동네로 보냈다. 그래서 퇴원해서 꽃동네로 가는 도중에 전화해보니 아직 꽃동네 내부에서 내 서류를 못 받아서 내일 오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입원했다. 내 속으로

꽃동네 가기 더럽게 까다롭게 하는구나. 가뜩이나 기분이 착잡해 죽겠는데 왜 꽃동네 이름부터 싫어하는 난데 할 수 없이 가는데 왜 이렇게도 절차가 복잡하나. 어쨌든 그 다음날 오후, 꽃동네로 막 가려고 했는데 일주일 전에 나와 같이 온 여자아이 원생이 죽었다고 소식을 들었다. 기분이 더욱더 착잡해졌다. 나눔의 집 원장님과 총무님도 양호선생님과 함께 갔다. 아무리 임시지만 원장님께서 자기에 임무를 끝까지 노력하는 게 보였다.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었다.

입원비는 20만원이 넘게 나왔다. 그래서 형이 주고 간 돈으로 냈다. 나눔의 집 차에 몸을 실었다. 꽃동네로 가는 동안 많은 일이 생각났다. 그 할머니 말씀이 불현듯 생각났다. 네가 어디가면 수녀님하고 같이 생활한다더니 이제 보니 다 들어맞는다. 나는 참으로 기가 막히다.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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