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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셜 장애인들이 말하는 안과밖이삶
관리자 조회수:657 121.129.203.203
2014-03-15 14:43:42
ㆍ탈시설 장애인들이 말하는 ‘안과 밖의 삶’
ㆍ물건을 사고, 집회도 하고… ‘내 선택’이어서 뿌듯”

뇌병변장애 1급 윤국진씨(38)는 서른다섯에
ㆍ“자립 지원, 수급비 등 복지제도 아무도 안 알려줘 처음으로 직접 돈을 주고 물건을 사봤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21년을 보내고 나온 2011년 1월, 시장에서 1만원을 내고 바지를 샀다. 시설에서는 ‘결정’해본 적 없이 35년을 보낸 윤씨는 ‘나도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쾌감을 느꼈다.

그는 “샴푸, 비누, 옷 색깔 등 생필품 하나하나 내가 골라 사는 게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팔다리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윤씨지만 한 달에 지원되는 활동보조 580시간으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그는 자립 뒤 서울시가 제공하는 체험홈 등에서 2년을 지냈고, 지난해 10월부터는 서울복지재단이 집을 빌려주고 공과금을 내주는 자립생활가정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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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과 활동가들이 14일 서울 광화문역 농성장에서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다. 이날은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 571일째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1990년 5월12일. 열네 살 되던 해 윤씨는 충북 음성의 꽃동네로 들어갔다. 시설 장애인 대부분은 입소 날짜를 생일처럼 뚜렷이 기억한다. 윤씨는 “내가 집에 있으면 동생들이 더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시설에 가는 게 모두에게 최선 같았다”고 말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오전 11시30분에 점심, 오후 4시30분에 저녁을 먹었던 시간. 음성 꽃동네에서 보낸 21년을 윤씨는 이렇게 요약했다. 아침잠을 자고 싶고, 입맛이 없을 때도 식사시간을 놓치면 먹을 수 없어서 배고픔을 대비해 먹었다. 오늘, 내일 구분 없이 시간은 그저 흘러갔다. 시설 안에서 꿈 같은 건 없었다. “어릴 땐 TV에서 본 모형 비행기 조종을 해보고 싶었는데, 머리가 커지면서 난 안될 거라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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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윤씨는 시설을 방문한 장애인단체가 보여준 영상에서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이 집회하는 모습을 봤다. 그는 “경찰이 장애인을 질질 끌고 가는데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이후 7년 만인 2010년 윤씨는 시설에 거짓말을 하고 외박을 나와 집회장에 갔다. 활동보조지원제도의 존재도 2009년 처음 알았다. 2010년 인천 민들레야학을 통해 처음 자립생활을 체험한 윤씨는 시설 직원들과 가족에게 시설을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네가 나가면 위험해서 어떻게 사느냐. 돈 있느냐’고 했어요. 가족들이 내가 살 집을 보고 와서는 불안해서 안되겠다고 하더라고요. 나를 생각해준다지만 진짜 나를 위하는 건 내가 원하는 걸 듣는 거예요.”

윤씨는 같은 시설에 있던 박현씨(31)와 함께 자립을 준비했다. 두 사람은 탈시설 운동단체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활동가들 도움을 받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사회복지 서비스를 바꿔달라고 지자체에 요구하고, 소송까지 진행했다.

결국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으로 진행되는 주거복지사업에 선정돼 집을 얻었다. 박씨는 “이 과정에서 내 앞으로 수급비가 나온다는 걸 알았다. 기본적으로 시설에서는 장애인 복지제도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탈시설 후 자립생활을 시작한 첫 달 두 사람에게는 각자 임시 활동보조 월 120시간, 정착금 50만원이 주어졌다. 옷에 용변을 보고 활동보조인이 올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 될 때가 잦았다. 박씨는 “시설에서는 적어도 이런 일은 없으니까, 우리 시설로 돌아가면 어떨까 얘기한 적도 있어요. 만약 돌아갔으면 후회했을 것 같아요. 비장애인도 다들 힘든 순간이 있는 건데.”

탈시설 4년차인 지금 윤씨와 박씨는 장애인 자립을 위한 이음센터에서 비상근으로 일한다. 박씨는 홍보팀에서, 윤씨는 장애인 거주시설을 방문해 탈시설에 대한 조언과 격려를 전하는 일을 한다.

둘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서명을 받는 광화문역 농성장에도 주기적으로 나간다. 윤씨는 장애인들의 생활조건을 위해 일하면서 ‘동료애’라는 걸 처음 느껴봤다고 했다.

그는 “시설에 있을 땐 무엇에든 내 의견이라는 게 없었다. 지금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과 얘기를 나누는 게 말할 수 없이 좋다”고 했다.
 
 
열아홉 살 때 시설에 들어갔다가 서른 살이 된 2011년 자립생활을 시작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오지우씨(33)는 올해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 14학번이 됐다. 뇌병변장애 1급인 오씨는 “집에서나 시설에서나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표현한 적 없이 산 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시설을 나와 자유를 찾은 이들에게 골칫거리는 ‘돈’이다. 현재 그는 기초수급비와 장애연금 등을 합친 한 달 55만원으로 생활한다. 윤씨는 “자립은 ‘돈을 쪼개는 삶’”이라며 “진짜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매달 남은 수당을 생각하면서 사고 싶은 물건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오씨는 한 달 수급비 65만원으로 월세 13만원을 내고 나머지로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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